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혹은 폭력은 어떻게 발생하고 어떤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가 노벨문학상의 작가 하인리히 뵐의 1974년 발표작으로 1975년엔 영화로도 제작된 작품이다. 뵐은 이 작품을 '소설'이 아닌 '이야기'로 명명하면서 종교적 정치적인 테마에 관한 의견을 피력하는 '팸플릿'이라고까지 강변했는데 작품의 내용이 지극히 현실을 담보한 까닭이 아닌가 한다. *여기서 잠깐 이야기는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던 카타리나는 하룻밤 사랑을 나눈 운명적인 남자가 경찰에 쫓기고 있음을 알고 그에게 도주로를 알려 주었다는 사실만으로 경찰에 연행, 심문을 받게 되고, 그 소식은 하이에나처럼 특종을 찾아 헤매는 일간지 기자 퇴트게스의 시야에 포착된다. 끈질긴 특종 사냥꾼 퇴트게스의 사냥감이 된 그녀는 순식간에 “살인범의 정부”가 되고 “테러리스트의 공조자”, “음탕한 공산주의자”가 되고 만다. 뵐은 이 작품에서, 대중의 저속한 호기심을 자극하는 선정적인 언론이 어떻게 한 개인의 명예와 인생을 파괴해 가는가를 처절하게 보여 주고 있다. 이 작품엔 실제 모델이 존재한다. 1972년 1월 바더 마인호프 일원들에게 숙식을 제공했다는 이유로 언론의 비난과 해직까지 당하고 후에 무혐의로 복직되었으나 명예 실추를 경험한 하노버 공대 심리학과 교수 페터 브뤼크너이다. 기사는 자신이 쓰고 싶은 이야기를 쓰는 것이 아닌 사실에 근거한 내용을 작성하고 대중에게 알리는 것을 목적으로 함에도 불구하고 현재 대한민국에 기사는 없고 기레기와 앵무새에 의한 기관지와 홍보지만이 판을 치고 있다. 거기에 또 춤추는 다수의 대중이 존재하고 최근엔 방송과 인터넷이 더러운 종이신문(은 갔따) 따위는 따라올 수 없는 속도로 새로운 이슈를 생성하고 그 진위 여부를 판단할 시간도 없이 마녀사냥을 즐기기도 한다. 소위 노란아이로 대변되는 황색언론과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이슈에 반응하는 대중의 보이진 않지만 존재하는 폭력에 처절히 파괴되어 가는 개인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보여지는 작품이다. 지금도 우리는 언론에 의해 왜곡되고 일 개인의 명예 실추는 물론 아직까지도 뭣만 했다하면 빨강색으로 덧칠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소설 심심해서 못 읽는다는 나이드신 분들에게 특히 일독을 권한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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